한이불 덥고잔지 34년, 제이와 경이는 지금 하니문 여행 중( 글:제이/사진:경이)

Saturday, July 27, 2013

오늘도 걷는다

뭐니 뭐니해도 역시 걷기 만큼 좋은 운동이 없는 듯합니다.

장비필요없이 운동화만 있으면 되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다른 운동처럼 부작용, 부상 염려 거의 없고..... 
특히 중년 이후엔 최고의 기초체력 유지법이라 생각됩니다. 

무릎 다치기 전에는 이렇게 뛰기도 했었는데....파인아일랜드로 이어지는 더글라스트레일.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는 매일 한 두시간을 나란히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아이들 문제,  노후대책...

그런데 공기좋은 숲속 트레일을 걸으며 이야기를 하면 어쩐지 보통때보다 논리도 정연해지고 좋은 아이디어도 더 잘 떠오릅니다. 가끔 과거지사가 시시콜콜 생각나  정담이 말다툼으로 이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지만. 

걷기가 치매에도 좋다는데 정말인듯 합니다. 그러고보면 옛날 그리스에는 늘 길을 걸으면서 철학을 논한다하여 페리파토스(산책길)학파라 불리던 일단의 학자들도 있었다지요?
  매주 금요일은 십년지기인  조디 밀러와 같이 걷는 날.  
 남편이 얼마전 모토사이클 사고로 다리를 다쳐 한동안 바깥 산책을 못했습니다.  좀 나아져서 오늘 오랜 만에 같이 산책을 했습니다.  목발 짚은 남편 때문에 천천히 그러나 오래도록 원없이 걸었지요. 역시 기분이 너무 좋네요. 
스노우스톰이 몰아친 영하 25도의 다운타운 걷기. (2012)

앞으로 여행길, 남편은 모토홈에 모토사이클과 자전거를 싣고 다니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행하는 틈틈이 가능한 많이 많이 걸을 생각입니다.  바퀴도 좋지만 역시 내 두다리가 최고라는 생각입니다. 연전에 넘어져 무릎에 크랙이 생기는 사고이후 무릎이 좀 시원치 않아 걱정이긴 합니다만. 


우리의 버킷리스트에는 아메리카과 유럽 대륙도보횡단이 들어 있습니다.
내생애 최고의 산책길!  역시 작년 지중해 크루즈선 탔을 때 매일 아침 걷던,
배 갑판을 한바퀴 도는 선상트랙. 



Sunday, July 14, 2013

숲속의 게릴라로 변신한 우리딸


연일 푹푹찌는 무더위. 전기도 물도 없다.  달겨드는 모기떼와 전쟁하며 하루 8시간의 육체노동. 저녁은  직접 모닥불을 피워 여럿이 팬하나에 해먹는다. 끈적대는 몸으로 잠자리에 든다.  열흘넘게 샤워 한번 못했다. 심지어 TP(화장지)사용도 금지돼 뒷처리는 나뭇잎으로 한다. 


무슨 특수부대 지옥훈련소이야기가 아닙니다.  인질수용소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비오면 꺼질까 애지중지 키워온 우리 대학생 딸네미의 여름 캠프이야기입니다.

자연보존봉사단의  캠프리더로 떠난 후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처음엔 얘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지요.


설마....거기가 미국 맞아? 혹시 남미나 아프리카 어느나라로 간거 아냐?



그런데 직접 방문해 보니.....사실이었습니다. 어제, 거진 한달여 만에 트윈시티에서 딸을 만났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고 북상, 2시간 정도 달려 힝클리란 곳으로 빠졌습니다.  무슨 카지노를 지나 한참을 가니 캠프가 있다는 스테이트파크의 사인이 보였습니다.




이제부턴 흰꼬리사슴과 새끼곰이 노니는 숲 길입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 그래블로드를 얼마나 달렸을까, 여기저기 수풀사이로 캐빈들이 나타났습니다. 문득 헨리데이빗소로우의 오두막이 연상되더군요.


중앙의 통나무집 앞에 Conservation Corps란  그래픽이 붙은 밴과 트럭들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베이스캠프랍니다.


이때 한 무리의 건장한 청년들이 콩가루같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우리차를 향해 다가 왔습니다.  순간, 여기가 만약 남아메리카의 어느 정글이고 이 친구들이 만약 총을 메고 있었다면....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들이 활짝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지만 않았더라면이건 영락없이 몸값을 노리고 길 잃은 관광객을 납치하려는 남아메리카 어느나라 반정부 게릴라에 둘러 싸이는 형국입니다.












다들 햇볕에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  땀냄새가 풀풀나는 이들은 미전역의 많은 지원자 중 엄선된 학생들입니다.

여름 8주간 주어진 이들의 임무는 청소년 캠프리더(Youth Corps crew leader).  2인1조가 되어 한 그룹당  6명의 청소년들(crews, 15세~18세)을 이끌고 다양한 자연보존 활동을 한다는 겁니다. 한동안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다니며 야영을 하기도 했다네요.

딸애가 보여준 작업 업리스트를 보니 이건 뭐 완전 노가다....심지어  벌목공이나 할 거 같은 일들도 보입니다.

각종 데이타/ 관찰, 조사활동
Water quality sampling & monitoring, Wildlife surveys.
경사지, 하천, 둔덕 등 개간정비
Slope stabilization,  Shoreline & stream bank restoration.
식목, 수목관리, 씨앗수집, 천수(?)가든 조성 등등
Planting, Nursery activities, Seed collection, Rain garden installation.
도크,교량, 계단...건축/목공관련작업, 길 만들기, 관리
Docks and bridges, Boardwalks and steps, Natural resource facilities,Trail construction and maintenance.

학기내내 공부만 하던 대학생들이 무슨 유격대 대장처럼 청소년 그룹을 이끌고 숲속을 다니며 이런 일을 한다는게 아직도 실감이 안갑니다.

한편 비영리단체지만 워낙 힘든 육체활동이 포함된지라 참여자들에게는 보수가 지급됩니다.  기간 중 일당과 모든 숙식경비제공 외에 8주간의 봉사활동 댓가로 지급되는 장학금은 한국 돈으로 약 400만원 정도.  딸은 오는 9월 부터 한 세메스터를 정부장학금을 받아 아프리카 세네갈대학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이번 여름 번 엑스트라 인컴은 오가는 길에 친구와 함께 모로코와 프랑스에 스톱오버해 여행경비로 쓸 생각이랍니다.

생각하면,
산모나 아기에 대한 웰페어시스템이 좋은 유럽에서 태어난 딸 애. 그 바람에 미국에서 생산한 아들과 달리 날때부터 돈벌며 나온 아이. 학비가 엄청난 사립대학을 다니지만 커서도 이렇게 다양한 장학금과 돈벌이로 부모 짐을 덜어주니 얼마나 대견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딸과 친구 레이첼이 거하는 캐빈 안팎을 둘러 보는 중.  이 무더위에 이런데서 샤워도 못하고 어떻게 잔다는 건지 너무 불쌍해서 처음엔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냉방기는 커녕 선풍기도 없는 한증막에 모기는 웽웽거리고...문만 열고 나오면 버그스프레이를 잔뜩 뿌렸는데도 모기떼가 단체회식 좀 하자며 달려 들더군요.

침대 위에 딸아이의 백팩- 기능성 좋은 신형을 사주었건만 마다하고 궂이 엄마,아빠가 처음 유럽백팩여행시 남대문시장에서 샀던 사반세기전의 저 구닥다리 배낭을 가져간 딸.



장하고 용맹한 딸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먹고 돌아 오는 길.
역시 감명을 받은 듯 한동안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이 더위에 저런 환경에서 아직도 한달을 더 지내야 
하는데 이해가 안가요. 저렇게 신이 나 있다는게.  

- 글쎄말야. 무슨 극기훈련들 하는거 같더라구.   

- 혹시 사실은 많이 힘든데 걱정할까봐 우리 앞에서만 
명랑한척 한 건 아닐까요?  

-  그건 아닌거 같애. 다들 정말로 밝고 행복해 보이자나.  
젊을땐 저런 고생도 재미있는 법이지.     

 -역시 청춘이 좋네요.  












Saturday, July 6, 2013

뉴욕변호사되어 돌아온 그때 그 소녀

우리가 정든 남가주를 떠나 이곳 미드웨스트지방에 정착해 사는 동안 늘 가깝게 지낸,  존경하는 분 중에 미국에 사십여년을 거주하신 P선생님 부부가 계십니다.  지난주 이분들 따님의 결혼피로연이 열렸습니다.

백인인 신랑과 P선생님의 큰딸인 신부는 둘다 맨하튼의 뱅크럽시(파산법)변호사입니다.  달포전에 이미 친가가 있는 그곳 뉴욕에서 공식 결혼식을 했고  친정이 있는 우리동네에서 주변 지인들에게 인사차 골프장 크럽하우스를 빌려 다시 결혼인사 겸 디너모임을 가진 겁니다.

양가부모와 가운데 신랑신부. 
혹시나 염려되는 프라이버시 문제상 잘 안나온 원경사진만 한장 올립니다.

그러니까 1997년 어느 여름, 대륙횡단 여행 중 이곳을 지나다가 우연한 인연으로 첫밤을 P선생님댁에 묵었습니다. 당시 하이스쿨 주니어였던 따님은 우리에게 제 방을 내주고 아랫층에서 잤던, 그래서 미안하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어린소녀가 대학을 마치더군요. 이어 원어민교사로 서울, 북경 다시 미국 여러도시를 전전하며 세상경험을 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게 불과 얼마전 같습니다.  그 무렵 P선생님 내외분이 걱정을 많이 하시던 일도 기억이 새롭네요.

그리고 얼마후 다시 시애틀에서 LSAT 공부를 한다는 소문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 보란듯이 동부의 명문법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모두가 안도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뉴욕에서 변호사가 되었답니다. 잠시 취직걱정을 하는가 하더니 맨하튼의 유수한 로펌에 들어 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딸 언제나 시집가 손주보나 부모님 애를 좀 태우나 싶더니 영화배우 뺨치는 잘생긴 애인이 생겼다는 풍문....그리고 마침내 오늘 백마탄 왕자님과 함께 혼례를 올리러 금의환향한겁니다.

이젠 서른두살의 원숙한 여인이되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처음 보았을때의 그 어린 주니어 여고생으로 자리하고 있는 신부입니다. 정말 아이들 자라는데서 세월의 빠름을 느낀다는 옛어른들 말씀을 다시 실감하는 오늘입니다.

사실은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결혼문화에 대한 비교를 해보려고 시작한 글입니다. 그런데 신부이야기로 서두가 너무 길어져 오늘은 일단 여기서 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은 결혼식의 준비절차와 과정,세레모니가 부모등 가족 그리고 하객위주인 경향이 있습니다. 또 규모가 큽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준비도 진행도 그날의 주인공도 철저하게 당사자 위주로 즉 브라이드와 브라이달그룸에 집중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객도 보통 신랑신부의 잘아는 측근, 친구들만 초대되므로 규모가 작더군요. 그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Thursday, July 4, 2013

노가다로 보낸 독립기념일



독립기념일은 아마도 미국인들이 가족 캠핑이나 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린 나들이는 커녕 종일 먼지 마시며 노가다를 했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지하에 있는 옷, 신발, 가구 기타 잡동사니들을  다 꺼내 정리하느라고.   
무조건 다 뒷마당 패티오에 꺼내 놓고 그 중 버릴 것과 팔 것을 구분하고 의류와 신발, 양탄자 등은 일광욕을 시켜주고 ....

힘은 들었지만 초봄부터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하고나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허리와 팔꿈치를 다쳐 도움이 안되고 잔소리만 하는 남편 대신 그나마 아들이 도아줘서 겨우 끝낼 수 있었네요. 

저녁은 세식구가 뒷뜰에서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으며 시원한 맥주한잔. 

그리고 소화도 시킬 겸 그냥 다운타운으로 야간산책을 나갔습니다. 사람이 붐벼서 불꽃놀이 구경은 싫다고 해서. 

그런데 다들 화이어웍을 보러들 갔는지 안그래도 평소 인적드문 시간의 한산한 시내는 그야말로 텅텅 비었더군요. 정말 어느 블락은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입니다.  사방에 불은 밝아도 어쩐지 유령의 도시 같습니다.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급귀가.